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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선생의 인내천사상 소개(고20회 박기순)
  • 박기순
  • 2009-04-15
  • 2,129
수운 최제우의 '인내천'사상의 진면목 입니다. 여러 동문들의 지식 메리트에 참고하세요

 꼭 150년 전, 수운 최제우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며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주창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사인여천ㆍ事人如天)'고 가르쳤다. 차별과 불평등 사회에 던진 휴머니즘 선언이었다. 그 울림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수운은 출생 자체가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모순 그 자체였다. 어릴 적 성명은 최복술(崔福述). 하지만 그의 초기 삶은 이름처럼 복스럽지 못했다. 재가녀의 아들로 태어난 데다 조실부모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선비였으나 가난했다. 그리고 늦은 나이까지 아들을 두지 못했다. 재취를 맞아들여 복술을 낳았으나 적서 차별이 엄연하던 시절인지라 서자인 복술은 관직을 갖기 힘들었다. 여기다 여섯 살 때 생모가 돌아갔고, 열여덟 살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버렸다.

그래서 그의 젊은 날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아버지 3년상을 치른 뒤 전국을 주유한 까닭이기도 하다. 세상을 떠도는 동안 불행한 운명으로 고통받는 이가 자신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국운 쇠퇴 기미가 역력한 가운데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이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가르침 중 하나인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보국안민ㆍ輔國安民)'가 당시의 고뇌를 잘 말해준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서 그는 민중을 구제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나선다. 이름을 '어리석은 사람을 주제한다'는 뜻의 '제우(濟憂)'로 바꾸고, 호를 '수운(水雲)'이라고 한 이유다.

수운이 상제(上帝)의 음성을 듣고 도통한 건 나이 서른여섯이던 1860년 4월 5일이었다. 한기로 심하게 앓던 그는 상제로부터 병을 고칠 수 있는 영부(靈符)와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조화(造化)를 얻는다. 하늘의 영험함을 얻은 다른 종교의 예언자들과 유사한 과정이다.

이후 수운은 본격적으로 동학 창도에 나선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기를 세우는 수심정기(守心正氣)에 열중한다. 그의 도는 하늘의 도를 이어받는다는 의미로 '천도(天道)'라 일렀고, 서학(西學)으로 불린 천주교와 맞선다는 뜻으로 '동학(東學)'이라고도 했다.

수운은 인간의 본바탕이 선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형벌 따위로 인간을 다스리지 않고, 그 선함을 안에서 끌어내려 했다. 이는 노자의 가르침인 무위이화(無爲而化ㆍ자연의 뜻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교화한다)와 통하는 것이다.

가르침의 핵심인 인내천도 바로 여기서 나왔다. 사람이 곧 하늘이므로 하늘을 받드는 사람은 사람을 하늘처럼 받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는 무차별과 평등이라는 휴머니즘의 담대한 외침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포부를 펴기엔 시대가 너무 암울했다. 관권의 수탈, 흉년의 기아, 질병의 창궐이라는 삼중고 속에 현실권력은 검가(劍歌)를 부르고 칼춤을 추는 무리를 용인하지 않았다. 이들의 눈엔 그저 혹세무민의 사학(邪學)으로 비칠 뿐이었다.

결국 그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체포돼 대구 관덕정 앞에서 처형된다. 다리가 부러지는 고문 속에서도 그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대구에 온 제자 최시형에게 '재빨리 멀리 달아나라(고비원주ㆍ高飛遠走)'는 글귀를 보내 후일을 도모케 한다. 알다시피 최시형은 동학의 2세 교조로 도통을 이어나간다.

수운이 하늘의 무극대도를 받은 지 150주년을 맞아 천일(天日)기념일인 5일을 전후해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천도교의 전신인 동학이 창도된 날에 그 발상지인 경주 용담정에서 인내천, 사인여천의 진리를 되새기는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세계를 휩쓴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물질과 효율 만능을 신봉했다. 그러다 최근 시대의 철퇴를 맞고 퇴출 위기에 몰렸다. 돈이 인간을 밀어낸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을 자본으로 보는 데 더 익숙해져서다. '인내천'이 아닌 '인내전(人乃錢)'이라고 할까.

때마침 국내 정계는 '박연차 금품 로비'로 한창 시끄럽다. 사람이 돈의 유혹에 굴복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웅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운의 가르침은 시공을 떠나 울림 강한 메시지로 여전히 우리 가슴을 깊이 파고든다.

죽음 전에 남긴 옥중시는 '널리 민중을 구제하라(광제창생ㆍ廣濟蒼生)'는 그의 웅지와 비원을 뜨겁게 내뿜는 듯하다. "등불이 밝은 물 위는 한 점 틈새도 없고/기둥은 삐쩍 마른 것 같지만 힘이 남아 있도다(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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